연방대법원의 속마음?

저는 이게 낙관적인 전망이라기 보다 아주 현실적인 전망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번 각하는 사실상 9대 0입니다. A주가 B주의 선거 결과를 뒤집는 소송이 각하된 헌법적 근거는 모릅니다만, 법리적으로 그래서 그런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알리토나 토마스는 민주당의 협박에 굴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서치, 바렛, 케베너 역시 돌변해서 트럼프를 배신했다는 해석에도 선뜻 동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바렛을 제외한 4명 모두, 펜실베니아에서 주정부가 주의회를 거치지않고 우편투표 데드라인을 변경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을 했습니다. (주대법원이 합법적이라 판결했으나 연방대법원에서 위 4명은 반대했습니다. 사람은 단 시간내에 바뀌지 않습니다. 나쁜 비유지만 탄핵 때, 헌재 재판관인 강일원이 권성동에게 Case를 제대로 만들어 오도록 유도를 했습니다. (물론 있을 수가 없는 짓이죠. 나쁜 쌔끼죠.)

계엄도 필요하지만, 법적인 투쟁에 있어서 ‘제대로 된 소송’을 만들어서 제기하면 제대로 위헌 재판을 받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A라고 판결했던 4명이, 갑자기 B로 판결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네요.

그리고 AC 바렛 판사는 노틀담에서 Stare Decisis 를 강의할 정도로 원문에 충실한 Textualist 입니다. 어떤 면에선 대법원이 속으로 ‘제발 제대로 case를 만들어 오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동안 시간날 때 재판과정을 쭉 추적해봤는데, 어떤 판사도 감히 ‘Sworn Affidavit’를 심리하지 않았습니다. 심리하면 증인을 불러서 증언도 들어야하는데 판도라의 상자니 건드리지 않았죠. 그냥 제출한 증거들이 허접하네 어쩌네 떠들면서(물론 이건 판결의 근거가 될 수 없으니), laches 나 standing으로 기각시켰죠.

희대의 거악과의 싸움입니다. 그런데 조지아에서 판결문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아주 솔직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연방대법원이 풀어야 할 문제고, 그들이 합리적인 판결을 내릴 것이란 기대를 완전히 접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비겁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랬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출처: Scott 인간과 자유이야기